모험으로 사는 인생-진리 실험
by padong11
혁명은 펜과 책 위에서 비롯된다
 
공자인 바이런은
‘글을 쓰는 신사’가 되고자 하였으나
그도 결국 그것을 단념하였다.
그들은 말과 문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지니며
세상과 거리를 둔다.
심지어 그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과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이광주,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 한길아트, 2001, 269쪽-

 

유럽 중세에 독서한다 함은 성서를 축납(祝衲)하는 행위를 의미했습니다(25쪽). 빅토르 위그에 있어서도 독서란란 성서를 축납하는 행위였고 그에게 바람직한 독서법은 성스러운 독서 하나밖에 없었습니다(29쪽).

“독서하는 사람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 인도된다. 이 때 ‘지혜’란 그리스도이다. 학습, 특히 ‘읽는 일’은 치유자요, 규범 자체인 그리스도를 숭배하기 위한 헌신의 행위이다. 궁극적인 주제는 지혜인 그리스도이다”(31쪽).

독서란 음독(音讀)이었고, ‘읽는다’(legere)함은 보통 ‘낭독’을, 소리내서 읽음을 의미하였는데(33쪽), 묵독이 일반화되는 것은 12,13세기에 이르러서였습니다(36쪽).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서>를 ‘현명한 입’으로써 읽는다 라고 하며, ‘성스러운 낭독’은 기도에 찬 독서요, 명상은 화창되는 문자에 정신을 집중함을 의미한다라고 말하였다”(33쪽).

‘문장은 사람됨을 말한다’라고 하지만, 우리의 자아는 우리가 읽는 책에 의해 형성됩니다. 왕 루이 12세는 인쇄술의 발명을 가리켜 ‘그것은 인간적이라기보다도 오히려 신적인 발명’이라고 하였습니다(233쪽).

“인간의 천재성에 의해 고안되고 인간의 손에 의해 조립되었다고는 하나 신의 업에도 뒤지지 않는 기적이다”(카르다노, 233쪽).

인쇄술 발명에 대해 세계사적이고 혁명적인 의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우리들은 오늘날의 지식과 정보의 ‘범람’ 속에서 구텐베르크 혁명이 지닌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자를 축으로 한 문자형 사회는 근대적 삶의 비이성화를 촉진시켰다는 것입니다(234쪽).

“시인 포프는 <우인열전>에서 인쇄본이 낳은 무의식이라는 ‘우리’ 속에 인간정신이 가두어지는 과정을 풍자하고 있다. 그 과정이란 말과 문자의 기계화 과정이다”(235쪽).

책은 인간의 발명품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이고 인간을 가장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책의 최대의 적도 인간이었습니다.

“어느 영국의 서지학자는 ‘책의 적’으로 곤충•불•물•가스•열•먼지•무관심•무지와 더불어 인간을 들고 있다. 책은 인간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면서도 한편 인간이야말로 책 최대의 적이 아니었던가”(244쪽).

주전 213년경 진시황이 모든 책을 불사르게 하고 460여명의 유학자를 산 채로 땅에 묻었던 분서갱유(焚書坑儒), 1933년 베를린 대학 강당에서 나치스 독일이 2만권의 책을 화염속에 던진 사건(244쪽), 그리고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무려 11년 동안 공자와 지식인을 학살했던 모택동의 문화혁명은 펜과 책에 대한 전형적인 반혁명이었습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1542년부터 작성되기 시작한 금서목록(248쪽)은 말과 문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진 시인(269쪽)의 의식에 더 자극적이었을 것입니다. 종교개혁이나 문예부흥, 프랑스혁명, 공산당 혁명 등 모두 가히 문자 혁명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혁명은 펜과 책 위에서 비롯된다”(249쪽).

우리는 널리 읽히는 책이 반드시 좋은 책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294쪽). ‘쓰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다’라고 토로한 사르트르도 자신을 둘러싼 ‘신화’의 허상을 분명 인지하였을 것인데(293쪽),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위대한 메시지를 담은 책을 우리들은 ‘고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고전이야말로 바로 인류의 영원한 베스트 셀러이다”(283쪽).

뵈브에 의하면 고전작가란 ‘자기의 사상, 관찰 또는 창의를 어떤 형태든 넓고 크며, 고상하고 생각이 깊고, 건전하고 아름다운 형식 아래 표현한’ 작가를 말합니다(334쪽). 책 중의 책, 인간에게 진정으로 혁명적인 책은 무엇일까? 말라르메의 싯귀에 따르면 결국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데(23쪽), 문자의 행간에서 이미지를 찾아내고 그와 더불어 도상들을 텍스트로 재구성하는 진정한 독서(32쪽)란 작업을 시도해 보시길…

“20세기 최고의 ‘아름다운 책’은 샤갈의 그림 성서로 일컬어진다. 105점의 삽화가 눈부신, 책마다 화가의 사인이 담긴 그 2권본 <성서>(257부 간행)는 완성까지 실로 26년이 걸렸다고 한다. ‘모든 시대를 통해 가장 풍요한 시심(詩心)의 원천’이라고 찬탄된 그 연작의 오리지널한 작품을 프랑스에 기증하면서 샤갈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by padong11 | 2007/02/04 23:14 | ㄹ 것 | 트랙백 | 덧글(0) |
불가능한 것을 좇는 나.
나는 완.전. / 온.전. 할수 없다.
그러나 항상 그러지 못함을 괴로워하고 자책한다.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다.

"사회의 임의적인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워서
양심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도 없다."
by padong11 | 2006/03/04 23:37 | | 트랙백 | 덧글(0) |
모험으로 사는 인생 중에서.
"신중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지식인
모든 문제의 양면을 보고
자신의 감정을 분석하고
정열 때문에 판단력을 흐리는 일이 결코 없는 지적인 사람"

---->강박적으로 그러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자기 자신에게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
당연한 어려움에 대해 에너지 소모를 하지 말아야 겠다.


"우리는 언제나 회의와 깨달음 사이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철저한 의심과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건방진 주장 사이에서 위태롭게 거닐고 있고"

----->그렇다. 항상 '현재'라는 순간에는 분별할 수 없다.
다만 현재의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다.
그 최선의 선택이란, 하나님 인도에 대한 의심과 하나님 뜻일꺼라는 추측 속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늘 불확실한 인간의 상태를 깨달아 겸손과 신중함을 유지는 사람이야말로 복 있는 사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는데,
바로 자기가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자기 자신은 불완전하며 오류가 있고
그래서 두려움과 불안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직면하고 인정함으로서,
하나님께 의탁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복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by padong11 | 2006/03/04 23:11 | ㄴ 것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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